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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영국 고전파의 애덤 스미스와 양대산맥 데이비드 리카도

by 클레스트 2023.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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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년 4월 18일 ~ 1823년 9월 11일)는 영국의 경제학자이다. 영국 고전파의 이론 체계를 완성, 애덤 스미스와 함께 그 대표자이다.

영국 잉글랜드 출신의 고전학파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를 이어서 고전학파 경제학을 확립시켰다. 고등학교 경제를 이수했다면 비교우위론과 절대 우위론을 배울 때 등장하는 학자이다. 엄밀히 말하면 절대 우위론을 주장한 것은 스미스 쪽이고, 그에 대항하여 비교우위론을 주장한 것은 리카도 쪽이다. 중등교육 차원에서도 잘 알려져서인지 케인스와 더불어 친숙하고 널리 알려진 경제학자이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에 비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인류는 멸망할 것이라는 그 유명한 인구론을 주장한 맬서스와는 서로 논쟁을 주고 받는 친구 관계였다고 한다.

리카도가 후대에 남긴 유명한 주장으로는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 노동가치설(Labor theory of value), 차액지대론(Differential rent theory)이 있다.

1772년 영국 잉글랜드 런던에서 출생했다. 그의 가문은 세파르딤 계통의 유대인으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를 거쳐 잉글랜드에 정착하였다. 그의 성씨가 포르투갈계의 성씨인 '리카르도'인 것은 이 때문이다. 증권업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증권업에 재능과 관심을 보였다. 14세부터 아버지의 사업에 종사하기 시작하였으나, 성인이 된 후 기독교인과 결혼하면서 종교 문제로 아버지와 절연하였다. 아버지로부터 독립한 후, 증권중개업ㆍ공채인 수업을 하여 재산을 모았다.십대 때 이미 증권투자로 큰 돈을 벌었고 20대에 이미 큰 사업체를 경영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 이후 하원의원이 되었다. 그는 산업자본가의 입장에 서서 지주를 보호하는 곡물법에 반대하였다.

1799년 27살에 우연히 A. 스미스의 <국부론(Wealth of Nations)>을 읽으면서 뒤늦게 경제학에 눈을 떠 연구를 시작했다. 이후 10년간 경제학 연구에 전념하게 되고 1810년에 최초의 저작 <높은 가격의 지금(地金, bullion)은 지폐가 평가절하되었다는 증거이다(The High Price of Bullion, a Proof of the Depreciation of Bank Notes)>를 발간한다.[2] 또한 그는 토머스 맬서스의 이론을 받아들여 1815년 발표된 〈낮은 곡물 가격이 자본 이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시론(Essay on the Influence of a Low Price of Corn on the Profits of Stock)〉에서 수입 곡물에 대한 관세 인상은 생산자의 이윤을 하락시키며 지주의 지대 수입을 높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리카도는 고전학파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의 이론을 계승, 발전시킨 고전학파의 완성자로 알려져 있다. 1817년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를 발표하였다. 그는 사회적 생산물이 지주ㆍ노동자ㆍ자본가 사이에 분배되는 법칙을 분석하면서 이윤과 임금, 지대의 관계를 밝혔는데 이윤은 임금에 반비례하며 임금은 생필품 비용에 따라서 변화하고, 지대의 상승은 한계경작비용과 인구의 증가에 따른다고 하였다(차액지대설). 또한 상품의 국내 가치는 생산에서 소요되는 노동량에 의해 결정되며, 지대는 비용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노동가치설)하는 등 애덤 스미스의 노동가치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또한 국가 간 무역에 있어 비교우위의 개념을 도입하였다(비교우위설). 그의 사상은 후대 경제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존 스튜어트 밀에서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상가들이 직접적으로 그의 사상을 계승하거나 적어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1823년 병으로 의회에서 물러난 후 같은 해에 5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중이염이 뇌로 번져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그의 비교우위론은 각국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산업에 집중하고 다른 국가와 무역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게 유리하다는 국제 분업 이론이다.

그의 노동가치설은 애덤 스미스의 노동가치설을 이론적으로 다듬은 것으로 이후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으로 비판,계승된다.

그의 차액지대론은 인구가 늘어나면 자본가, 노동자, 지주 중에서 지주가 제일 돈을 많이 번다는 이론으로 지주가 차액지대라는 불로소득을 취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그가 남긴 저서 중 하나인 정치경제학 및 과세(혹은 조세)의 원리는 1991년3월31일 비봉출판사에서 완역본을 냈었고 권기철이란 학자가 8장까지(원본은 32장) 번역한 책을 출간한 상황이다. 어떤 소비자가 비봉출판사에 문의하니 처음 번역한 교수가 개정판을 내는 걸 생각은 하고 있다고 대답했었다는데 결국 흐지부지된 걸로 보인다. 대학도서관 같은 곳에 오래된 완역본이 있기도 한데 한자 투성이라 읽기가 매우 불편할 수도 있다. 이 책은 케인즈의 일반이론,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함께 경제학 4대 고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국부론과 자본론, 일반이론은 완역본이 나왔지만 리카르도의 책은 일부번역본만 유통중이다. 완역본의 출간 당시 판매가는 9,000원이었지만 지금 중고책시장에서는 4배 가까운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며 역시 한자가 많으니 읽을 거면 네이버 한자사전이나 옥편이라도 준비하는 게 좋다. 인문 고전 번역에 있어서 한국의 척박한 풍토를 보여주는데, 독어나 고전어가 아닌 영어임에도 아직까지 한글 완역본이 없는 형국이다.

스파라드 유대인으로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고 경제학 연구에 뜻을 두어 경제학과 자연 과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데이비드의 아버지는 런던 증권거래소의 중개인이어서 리카도는 아버지로부터 증권거래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21세에 그는 퀘이커교도인 프리실라 윌킨슨과 결혼하기 위해 아버지와 결별하고 결국 유니테리언주의로 종교를 전향하였다. 그의 부모는 그 이후로 그와 절교하였다.

1809년 통화 문제에 관한 <금의 가격>과 <떨어진 곡물값이 자본 이윤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1817년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를 발표함으로써 그의 방법론을 체계화하고 이론 경제학자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이어 지대론을 기초로 하여 노동 가치설, 차액 지대론 등 분배의 여러 법칙을 밝혔으며, 그 밖에도 잉여 가치론, 이윤율 저하 이론, 국제 무역 이론 체계를 완성함으로써 후세의 경제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스미스의 절대 우위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비교 우위론을 발표했다. 1819년 이후 종신 하원 의원이 되었다. 참고로 그는 맬서스와 친한 친구였으며 유서에 있던 3인의 재산 상속인에도 포함시켰다.[1]

또한 그는 노예 폐지론자로 동인도 회사의 회의에서 노예제도가 영국의 국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였다.

노동가치이론/노동가치설

노동가치이론은 훗날 한계효용학파가 나타나기 전 초창기 경제학의 특징인 객관적 가치론의 대표적인 학설이다. 간단히 말해 모든 물건을 가치 있게 만든 것은 노동이란 주장이다. 이 노동가치설은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현대 주류 경제학 관점에서 노동가치설은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이론이다. 한계효용(marginal utility)학파가 등장하면서 노동가치설은 빛을 잃었다. 한계효용학파는 가격은 공급자(노동자)가 아니라 수요자(소비자) 입장에서 결정된다고 본다.한계 효용 학파에 따르면, 합리적인 경제주체는 한계 효용이 한계 비용과 같아지는 지점을 선택한다. 한계효용학파에 따르면 노동자가 얼마나 힘들게 노동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고객이 얼마나 만족했느냐에 따라서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리카도의 노동가치설은 우리의 주관적 요인, 우리의 기호나 우리가 느끼는 효용에 의해서 상품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질적으로 대상에 투여한 객관적 대상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주장인데,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는 그 객관적 대상을 노동이라고 본 것이다. 이 노동을 시간이라는 단위로 측정하여 그 구체성을 사상(버림)하면 추상적이고 계측 가능한 대상으로서의 노동이 도출되고 이를 얼마나 투입했느냐가 곧 상품의 가치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치에 의해서 사람들은 교환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훗날 마르크스는 리카도의 분석에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경쟁과 가치 이전의 동학이 배제되어 있어 충분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노동가치이론을 발전시키게 된다.

리카도의 대등정리

리카도 대등정리(Ricardian equivalence theorem 또는 Barro-Ricardo equivalence theorem)는 정부지출수준이 일정할 때, 정부지출의 재원조달 방법(조세 또는 채권)의 변화는 민간의 경제활동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론이다.

리카도 대등정리가 성립하려면,
저축과 차입이 자유롭고, 저축 이자율과 차입 이자율이 동일해야 한다.
경제활동인구 증가율이 0%이어야 한다.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소비자이어야 한다.
정부지출수준이 일정해야 한다.

비교우위론

비교우위론은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리카도가 처음 주장할 때만 하더라도 낯설고 반직관적이어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리카도가 죽고 난 뒤 20여년이 더 지나서야 영국은 리카도의 주장처럼 식량 수입을 제한하는 곡물법을 폐지했다.

차액지대론

토지를 임대하는 지주계층, 토지를 임차하여 수익을 얻는 자본가계층, 토지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노동자계층이 있다고 하자. 이럴 경우 자본가는 지주에게서 토지를 임차하고, 생산된 수확물로 이익을 얻는다. 그런데 토지의 질은 천차만별이며, 따라서 수확물의 양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렇기에 토지의 질에 따라 지대가 달라질 것이고, 자본가는 최대의 이익을 얻기위해 가장 투자 지대대비 수확물이 많은 토지를 임차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자본가들은 가장 이익이 높은 토지를 임차하려 할 것이고, 이것은 이익을 평준화시키는 과정을 가져오기에 결국 어떤 토지를 임차하더라도 이익은 동일할 것이다. 즉, 질이 높은 토지나 질이 낮은 토지나 수확량은 다르더라도, 임차시 수익은 동일해진다. 그렇기에 자본가들은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모두 같은 이익을 얻을 수밖에 없으며, 결국 토지를 임대하는 지주계층의 이익만 커진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이익추구를 경제의 가장 큰 발전요소로 본 리카도는 자본가의 이익을 더 키워야 된다고 보았으며, 결국 자본가의 이익을 키우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소득(의식주의 최저욕구만을 충족시키는)을 얻을 수밖에 없다고 본 이론이다.

리카도가 살던 당시 영국은 밀의 수요가 급증하여 밀을 수입해 오고자 했으나 지주들이 반대하였다. 값싼 밀이 수입되면 영국 내 밀 가격이 급락할 것이고, 그러면 밀 경작지인 땅값도 급락하니 반대하는게 당연했다.리카도는 밀을 수입하지 않아 밀값이 올라가는 상황에서는 자본가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땅 주인만 부자가 된다(차액지대론)고 주장하며 영국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고자 했었다.

그 이유는 당시에 나폴레옹 전쟁 전후으로 밀값이 폭등으로 경제가 파탄날 지경이 되자 리카도와 많은 정치인들이 곡물법을 폐지하고자 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리카도가 죽고나서 몇 십년 후인1846년 아일랜드 대기근 계기로 폐지된다.관련기사

비옥도가 각기 다른 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A땅: 밀 수확량이 100만원 어치인 땅
B땅: 밀 수확량이 80만원 어치인 땅
C땅: 밀 수확량이 60만원 어치인 땅

농업 자본가가 지주로부터 땅을 빌리고 농부 노동자를 고용해 농사를 짓는다고 가정해보자. 자본가가 지주로부터 땅을 빌리는데 10만원을 줘야하고 노동자를 고용하는데 50만원을 주어야 한다. 그러면 농업자본가가 농사짓는데 10+50만원의 비용이 든다. 이렇게 해서 농업 자본가가 농사를 지으면 어떤 땅을 빌려 농사 짓느냐에 따라 수익이 달라진다.

A땅을 빌려 농사를 지은 자본가: 40만원의 이익(100만원 - 10만원 - 50만원)
B땅을 빌려 농사를 지은 자본가: 20만원의 이익(80만원 -10만원 - 50만원)
C땅을 빌려 농사를 지은 자본가: 0원의 이익(60만원 -10만원 - 50만원)
상황이 이러니 농업 자본가들은 서로서로 밀 수확량이 많은 A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려 할 것이다.

결국 이들은 웃돈을 주더라도 A땅을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하게 된다.

웃돈을 얼마나 더 지불할 수 있을까? 웃돈 경쟁이 치열해지면 최대 40만원까지도 웃돈으로 지불할 수 있다.

지주 입장에서는 이전보다도 40만원의 수입이 더 생긴다. 이 40만원을 차액지대라고 한다.

B땅,C땅 역시 자본가 사이에 서로 빌리려고 경쟁하다보면 각각 20만원의 차액지대, 0원의 차액지대가 생긴다.
자본가의 수입이 늘어나는 것 보다 지주의 수입이 더 많이 늘어나며 노동자는 수입이 그냥 먹고사는 데 그친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세금을 삭감하고 이에 따른 재정적자를 국채를 발행하여 조달한다고 하자. 이 때 국채이자율과 시장이자율이 동일하다면, 소비자의 생애 소득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미래에 조세가 늘어날 것을 대비하여 현재 소비를 줄이게 된다. 그러면 현재 세대는 '절약'이라는 행위로 세금과 같은 효과를 받게 되어, 미래 세대에 부담이 전가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저축에는 변화가 생기지만, 소비에는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고, 실질이자율도 변하지 않게 된다.

배로(R. Barro)는 이러한 리카도 대등정리를 바탕으로 재정정책의 무력성을 주장하였다

리카도 대등정리는 너무 제약된 가정에서 도출된 것이기 때문에 현실 설명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대부분이다.

특히 리카도는 고전학파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의 이론을 계승, 발전시킨 고전학파의 완성자로 알려져 있다. 1817년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를 발표하였다. 그는 사회적 생산물이 지주ㆍ노동자ㆍ자본가 사이에 분배되는 법칙을 분석하면서 이윤과 임금, 지대의 관계를 밝혔는데 이윤은 임금에 반비례하며 임금은 생필품 비용에 따라서 변화하고, 지대의 상승은 한계경작비용과 인구의 증가에 따른다고 하였다(차액지대설). 또한 상품의 국내 가치는 생산에서 소요되는 노동량에 의해 결정되며, 지대는 비용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노동가치설)하는 등 애덤 스미스의 노동가치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또한 국가 간 무역에 있어 비교우위의 개념을 도입하였다(비교우위설). 그의 사상은 후대 경제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존 스튜어트 밀에서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상가들이 직접적으로 그의 사상을 계승하거나 적어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의 영향은 현대 경제학이 발전해온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피에로 스라파 등의 불완전경제이론을 주창한 학자들도 리카도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을 묶어 '네오리카도주의 경제학파'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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